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монолог 1monologue : SMERDYAKOV 2020. 3. 11. 13:47
어미에게 버림받은 고양이가 운다. 어미의 품. 곯은 배를 채워줄 젖. 스산한 새벽을 모르고 지나가게 해줄 온기를 찾아 운다. 울음소리가 희미해지면 손을 뻗어야지. 지쳐서 숨소리마저 위태로운 것을 끌어안고 노래를 불러줘야지. 다정을 찾아 품으로 파고들 때. 그 때. 목을 비틀어내야지. 어미의 품으로 가자. 돌아가자. 구슬피 운 이유로 특별히 옆에 뉘어줄게. 자신의 새끼라면 머리쯤 없어도 알아보겠지.
탄생. 그 순간에 저는 울었을까요. 그러했다면 눈물도 나왔겠죠. 세상에 굴러 떨어지자마자 흘렸을 그것이 몹시도 그립습니다. 문 너머에서 모르게 발작을 하며 눈물을 흘릴 때마다 저는 다시 태어납니다. 그 순간 탄생합니다. 새롭게 새롭게 더욱 새롭게. 어제의 저와 지금의 제가 같아 보이십니까. 저런. 둔하기도 하시지. 아니. 아니죠. 당신은 나를 모를테니. 시선의 끝에 스치는 것조차 그 횟수가 적으니 그럴 만합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당신을 용서해.
도련님. 도련님과 이어져 있고 싶습니다. 까라마조프가의 피는 이 몸의 반쪽이지요. 주인님의 것을 제외한 나머지 반도 같이 이어져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속삭이는 소리를 듣습니다. 기억과 위로. 둘만이 공유하는 비밀을 엿듣습니다. 아는 척은 하지 않으니 이 행위는 당신이 모를 것입니다. 몰라야 합니다. 아니, 아셔야만 하시죠. 엿들음에 대한 경멸을 가득 담은 눈으로 바라봐주십시오. 비밀을 들킨 수치심을 담아 욕을 뱉어주십시오. 무릎을 꿇고 앉아 시선을 당신의 구두 끝에 맞추고 정갈한 바짓단이 숨긴 단정한 발목뼈를 상상하며 용서를 구할 수 있게 해주셔야만 합니다.
비가 옵니다. 오늘의 빗소리는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아아. 아. 세차게 퍼붓는 것이 좋을 텐데요. 그러해야 깊은 이 밤 당신이 취해 지르는 괴성, 또 다른 당신이 악몽에 지르는 비명, 또 또 다른 당신의 울음소리가 다 묻힐 테니. 저의 발작은 오늘은 없습니다.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것의 꿈틀거림도 이렇게나 사랑스러운데, 당신의 목을 조를 때엔 어떤 기분일까요. 아아, 아, 역시나 사랑해야지.
디저트를 찾는 사람은 이 집안에 없는 것과 같지만 습관처럼 빵 위에 올릴 크림을 준비하곤 합니다. 귀퉁이가 물러진 딸기를 으깨고 또 으깨고. 손 아래에서 뭉그러지는 이 느낌이 좋습니다. 네 좋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투명하게 뻘건 과즙을 비죽비죽 토해내는 것을 본래 과육의 형태가 없어질 때까지 쉴 새 없이 으깨어 그릇에 담습니다. 치워내도 같은 과정의 반복으로 물든 것은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옅은 분홍색 위에 또 덧대고 덧대져서 남겨진 새빨간 자국에 남모르게 입을 맞춥니다. 디저트를 준비하는 시간은 행복합니다.
온 몸에 불이 붙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경험이 있어서 물은 것은 아닙니다. 제 전신엔 그을려 피부가 늘어붙은 화상대신 시퍼렇고 뻘겋고 보랏빛의 울혈과 상처가 그득했을 뿐이니까요. 불이 붙었다면 이런 느낌일까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몸을 기대고 상처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멍이 짙어지고 피가 말라가며 타는 통증을 뿜어내는 모든 것을 눈에 담았습니다. 누군가에겐 즐거움을 주었을 그 흔적들을 남김없이 담았습니다. 아프지 않습니다. 즐거우셨잖아요. 저는 즐거움의 고통을 그렇게 배웠습니다.
집안의 관리자는 쇳대 꾸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택을 관리하는 데에 있어선 필수품이죠. 주인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개의 방들을 제외하곤 별 가치가 없는 곳들은 마음만 먹으면 쉬이 드나들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당신의 방이라거나. 관리자는 아니지만, 시종은 눈치를 보지 않고 쇳대에 손을 뻗을 수 있습니다. 당신들이 시종의 존재를 간과하는 만큼 저는 그런 자유를 얻곤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별 가치가 없는 그곳이 제겐 성전과도 같습니다. 아니, 성전입니다. 성전의 주인이 빼곡히 적어놓은 기록들을 보기 위하여 저는 오늘도 쇳대를 듭니다. 들고나온 당신의 흔적을 읽습니다. 신기하게도 들립니다. 모든 문장이 도련님, 당신의 목소리로. 빠짐없이. 쉴 새 없이. 당신은 제 눈과 귀에 대고 말을 건넵니다. 두 손엔 당신이 가득합니다. 두 눈과 두 귀에도 당신으로 가득 찹니다. 이제는 당신의 말씀과 흔적이 아닌, 당신 그 자체가 된 것을 읽고 또 듣습니다. 그 위에 누워 마음껏 구르고 느낍니다. 나는 당신을 느낍니다.
잠이 들기 전, 당신의 위에서 수음을 할 것 같습니다.
알렉세이 이야기를 해볼까요.
도련님께서는 참 자주 넘어지셨습니다. 아, 어릴 적에요. 양쪽 발목은 보통의 사람의 것처럼 잘 붙어있었는데 제 기능을 해내는 데에는 오래 걸린 모양이었습니다. 곧잘 넘어져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내면 그 곁에는 항상 이반 도련님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둘 밖에 없는 것처럼 늘 항상 붙어 다니셨죠. 적은 나이만큼 작은 손을 자신의 동생에게 내밀곤 일으켜주곤, 팔과 무릎, 옷가지에 묻은 흙먼지도 털어내 주었습니다. 그리곤 다시 손을 맞잡고 어린 동생의 걸음 속도에 맞추어 걸어가곤 했죠. 당연했습니다. 알렉세이는 이반의 동생이었고, 누구나 사랑하는. 사랑 받을 만한 아이였거든요.
부러웠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겠습니다. 역겨웠다에 가까울까요. 어린 나이의 저는 그 단어를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느낀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 누군가의 챙김을 받고, 아무렇지 않게 웃고 울고 숨김이란 하나 없는 그 모습이 그랬습니다. 사랑이란, 그에게 실로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두가 그에게 그것을 전한다면, 누구 하나쯤은 악의를 내비쳐도 상관없는 일이 아닐까요.
저는 그저 누구 하나 잡아준 적 없는 빈 손에 악의라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무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고깃덩이를 나눌 때엔 전용 식칼과 손도끼를 사용하곤 합니다. 아. 방금 전 드신 식사를 포함해 모든 식사에는 도끼로 손질한 고기는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건 조금 더 개인적인 일에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같은 고깃덩이입니다. 내리치면 피가 비치고, 으스러진 뼈가 튀어나오는.
가축이 고깃덩이로 변하는 곳은 날붙이가 아닌 쇳덩이를 사용합니다. 묵직한 쇠공과 쇠망치와 같은 것들. 날뛰기 시작하면 육질이 상하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가축이 죽음을 알기도 전에 머리를 내려치고 내려쳐서 네 발의 것이 바로 설 수 없게 만들죠. 잔혹한가요. 그 잔혹함은 매일 당신의 식탁 위에 오르고 있답니다. 그것이 우리의 양식이죠.
병시중엔 꽤나 익숙합니다.
마르파부인은 주인님이 길게 외출을 하시면 몸져눕는 것이 빈번했으니까 말입니다. 그것이 꾀병인 지 아닌 지는 알 수 없었으나, 부인의 병시중은 저택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어린 저의 몫이 되곤 하였습니다. 하인의 하인이 된 셈이었죠. 우유를 데워와라. 몸을 닦을 물을 떠와라. 젖은 영견을 새로이 갈아오라. 병중에도 쉴 새 없이 떠들 체력은 곧잘 남아있곤 하였으니, 제 두 다리는 바쁘게 움직였을 뿐입니다. 부인은 자신이 아플 때와는 반대로 숨겨지지 않는 고통의 울부짖음에도 제 방문을 단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습니다. 잠구어 놓지 않아서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든 그 문을 열어볼 수 있었음에도 이 저택에선 어떤 누구도 고통으로 가득 찬 작디 작은 공간에 발을 디디지 않았습니다. 꿈쩍도 하지 않는 문을 노려보다 까무룩 정신을 잃으면, 발작의 밤은 지나가곤 했습니다. 흘러나왔던 간질은 온데간데 없고 저의 다리는 그저 다시 시중을 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일 뿐이었죠. 키가 자라나고 울대가 굵어지며 더 이상의 부인이 청해오는 일은 없었으나.
여전히도. 저는 병시중에 익숙합니다.
제가 무서우신가요. 제가 두려우신가요.
저는 미쳐있지 않습니다. 미친 게 아닙니다.
조금 더. 더. 더. 더. 바닥으로 내려오십시오. 죄악을 뒤집어쓰고 밑바닥으로 떨어지십시오.
그럼 저는 행복합니다. 당신들과 저는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이란 것의 경험은 으레 그렇듯이 머리에 강하게 남아있고는 합니다. 그 날은, 그리고리씨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마르파 부인이 평소와 달리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지르는 것 또한 들었으니, 둘의 다툼이 그 탓이었을까요. 그에게 눈에 띈 것은 늘 그랬듯이 구석에 처박혀, 그의 말에 따르면, 댕그러니 빈 눈으로 구경하듯 바라보는 어린 저였습니다. 기분이 나쁜 눈빛이란 말은 그 때에도 꽤나 여럿 들어보았던 것 같습니다. 여하간 그러한 이유로 갑작스럽게 뺨을 맞은 후, 상의를 뺏긴 채로 뒷문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에는 듯한 추위가 맨살로 느껴지었나. 그날은 유독 추웠으니, 그리고리의 처사는 과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눈물을 흘리지도 잘못했다고 빌어대지도 않고 쫓겨난 채 서있는 것을 한 번 돌아보고 저택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 쭈그려 앉았습니다. 팔을 쓸어보다 푹 고개를 처박은 지 얼마가 지났을까 작은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뺙-뺙-소리에 가까운 높고도 유약한 울음소리를 좇아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렸습니다.
눈곱이 잔뜩 껴있는 검은색의 작은 고양이. 다리를 절어대다 걸음을 제대로 떼지 못하고 픽 넘어지는 것이 무리에서 낙오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 버려진 고양이. 그 고양이가 첫 번째였습니다. 첫 번째의 장례식의 주인공이기도 하였습니다.
큰 소리를 내지를 틈도 없이 어린 손에 목이 졸려 숨을 잃어갔습니다. 늘어지는 작은 것을 품에 안고 그것이 온기를 잃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품에서 느낀 첫 죽음이었습니다. 추위에 마른 풀을 덮어주곤 조용히 행복을 찾으라 읊조렸던 것 같습니다. 고통 범벅의 삶에 저는 구원을 주었습니다.
그날에 다시 저택으로 어떻게 돌아갔는지 심한 처사에 대한 그리고리의 사과는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머릿속에 없습니다. 중요하지 않으니 상관 없습니다. 저는 쫓겨났고,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아. 쫓겨나지 않고 그 고양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조금 달랐을까요. 하지만, 이미 일은 일어났습니다. 저는 행동했고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리없는 밤. 깊은 밤. 촛불 앞에서 도련님의 논문을 읽는 것은 저의 기쁨입니다.
아아. 도련님은. ... 도련님은, 씨발, 제 기쁨입니다.
뒷통수에 들러붙는 혐오의 무게로 뒷목이 뻐근하다.
저는 당신의 경멸을. 프하하. 건네는 것은 혐오로 들어차있지만, 당신의 안에서 그것만은 확실한 제 것이기에. 아무것도 없다와는 조금 다른 그 차이를 당신은 여전히 모르고 있기에. 나는 당신의 경멸마저 사랑해.
입 안의 상처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열흘정도면 아물어갔다. 적지 않은 경험으로 알게 된 수치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피를 흘린다. 끝없는 고통을 점막에 새겨 넣는다. 잊을 수 없겠지만, 잊지 않기 위해서. 피가 베어나와 입 안을 적실 때마다 기억은 같은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기쁜 일이다. 마주한 당신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듯 빠른 걸음으로 곁을 스쳐갈 때마다, 어쩌다 시선이 닿을 때마다 볼 안 쪽과 혀끝을 짓씹었다. 꽤나 비린 맛의 것을 삼켜내며 허리를 숙이고 두 손을 감추며 눈을 굴린다. 언젠가는 이것을 당신에게 뱉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