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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Монолог 3
    monologue : SMERDYAKOV 2020. 3. 25. 14:36

     

     

    바위보다 무거운 피곤이 온몸을 덮쳐누르는 밤은, 발작의 밤보다 싫었습니다. 상쾌함은 하나 없이 그저 땅 밑으로 추락하는 느낌. 오늘의 저는 추락합니다.

     

     

    짧은 비가 내리고 남은 것은 으레 그러하듯 자욱한 물안개입니다. 부옇게 일어선 부는 바람이 없으니 무겁게 제자리를 지키고는 있습니다. 축축한 습기가 온 곳에 조용히 스며듭니다. 걸친 옷은 보다 더 굽은 어깨를 짓누릅니다. 소매의 끝을 무의식적으로 몇 번 당겨 잡다 걸음을 옮깁니다. 이런 날씨에 종이는 쓸모를 다하지 못합니다. 신경을 집중해 쓰는 글씨들은 죄 번져버릴 뿐이죠. 번지고 번져 본래의 뜻을 읽는 이에게 전달하지 못할 것이 뻔합니다. 그러니 저와 같은 존재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온전히 무언가를 담아두기만 할 곳 말입니다. 물론 누군가 펄쳐 담아둔 것을 읽을 일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https///martyr-and-apostasia.tistory.com/18

     

    диалоги 7

    S/ 찾으신 종이를 가져왔습니다. 도련님. V/ 앞으로 내 방에 들어올 때는 인사를 하기 전에 문부터 닫아. S/ 앞으로. 방문을 닫을 날이 많을까요. 잊지 않고 기억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V/ 너는 늘 네게 허락된..

    martyr-and-apostasia.tistory.com


     

    *이어지는 대화는 표도르 (https///twitter.com/VODKA_IS_YUMMY) 와 진행하였으며, 하단의 독백에 선행되는 내용입니다. 사전에 협의 된 폭력상황에 대한 묘사가 있음을 알립니다. 또한, 대화 게시에 대한 양해를 구했음을 밝힙니다.

     

     

    F/ 이리와봐

     

    S/ 네, 주인님.

     

    F/ (머리칼을 잡아채선 질질 끌고간다.) 그레고리는 너를 너무 봐준다니까.

     

    S/ (잡힌 머리가 훅 숙여진다. 균형을 잃은 몸이 휘청여 걸음이 꼬일까 온 신경이 다리로 쏠린다.) ... 어디를, 가십니까.

     

    F/ 정원으로. (비틀거리든 신경쓰지 않고 머리칼을 잡은 그 상태 그대로 질질 끌고 복도를 거닌다.) 네 녀석이 요새 버릇이 잘못든 것 같거든.

     

    S/ (휘청이는 몸이 벽에 부딪쳐 좋지 못한 소리를 낸다. 따라 걷는 복도에 길게 술냄새가 퍼진다. 이상한 일도 아니지. 술에 취하지 않은 채로도 큰 손을 날린 것이 적지는 않으니, 그저 빠르게 지치기를 바랄 뿐이다.)

     

    F/ 잘못을 빌 테냐? (저택의 현관문 앞에 서서 돌아본다. 머리칼을 잡은 손을 떼고선 허리춤에 손을 얹는다.)

     

    S/ (이끌던 힘이 순간 사라져 바닥에 납작 엎드리듯 넘어진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가만히 선 두 다리 뿐.) 무엇에 관한 잘못입니까. 아니, 아닙니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주인님.

     

    F/ 무엇에 관한 잘못이라. (턱을 손 끝으로 쓸듯 만지며 쭈그러진 모습을 보다 발로 머리를 툭툭 찬다.) 잘못했어? 잘못, 했어? 어? (킬킬 웃으며 쪼그려 앉는다.)

     

    S/ (맥없이 밀리는 머리를 끌어와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낮은 자세에서 마주한 이는 웃고 있었으나 잔뜩 성이 난 눈으로 저를 보고 있다. 언제쯤 저 눈이 감기려나.) 네, 잘못했습니다. 저의 잘못입니다.

     

    F/ 오-! 잘못했네? 너의 잘못이야? (박수를 치며 웃는다. 큼큼, 목을 가다듬고 바닥에 침을 뱉는다.) 잘못을 인정했으니, 이제 맞아야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툭툭 쓸어주곤 문을 열고 다시 쳐다본다. 일어나려는 모습에 고개를 기울이고 혀를 찬다.) 쯧. 두발로 걸으면 쓰나. 기어와.

     

    S/ (... 술에 뭘 타먹은 거야. 보이는 두 발이 무엇 하나 신지 않은 맨발이다. 젠장할, 욕이 튀어 오르는 것을 누르며 팔을 뻗어 땅을 디뎌간다. 이미 낡아빠진 옷에 흙먼지가 더 묻는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문을 지나는 것을 낄낄대며 바라보는 눈이 느껴진다.) 주인님, 자비를 ...

     

    F/ (엉성하게 기어가는 꼴이 덥수룩한 머리와 낡아빠진 옷에 잘 어울리는 모양새라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다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더욱 크게 웃는다.) 그래, 기어야지! 지네가 신발을 신으면 어떻게 될 지 생각해본 적이 있냐? 스메르-쟈코프-! 기어오면서 대답을 생각해야 할 거야. 자비라는 단어는 지워.

     

    S/ (주위가 온통 웃음소리로 들어찬다. 다른 소리를 허용치 않겠다는 듯 더욱 크고 끊임없는 웃음. 모르게 볼 안쪽 살을 짓씹었다. 어차피 죄 터져나갈 것이 분명한데 상처하나 더해진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자비는 늘 없었다.) 신발을 준비하는 데에도, 그것들을 다 신는 데에도 오래 걸리지 않을까요. 그것만으로 기운이 다 빠질 것 입니다.

     

    F/ 기운이 다 빠질 것입니다. (네 목소리를 흉내내곤 크게 웃으며 등 위에 올라타 앉는다.) 읏챠-! 잘 아는구나. 너도 곧 그렇게 될거야. (머리칼을 쓸어넘겨주다 확 움켜쥐곤 하늘을 보게 한다.) 캄캄하지? 캄캄할 거야. 캄캄해야 할 거고. (자연스레 찌푸려지는 얼굴을 보며 고개를 기울인다.) 왜?

     

    S/ (등 위로 얹히는 무게감에 헛숨을 들이켰다. 단단히도 잘못 걸린 날이라 생각하던 차에, 억지로 머리가 들어올려진다. 씨발, 온통 새까만 것들인데 등 위로 늘러 붙은 것이 그 중 제일임에 틀림없다. 고통은 익숙하기에 별 말없이 빠르게 모든 것이 끝났으면 하고 생각했다.) 아픕니다. 아파요.

     

    F/ 아파? 그것 참 다행이네. 아프라고 한 건데 안 아프면 내가 서운하잖냐. (등에서 일어나 로브를 툭툭 털어낸다.) 스-메르쟈코프! 너는 왜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응?(뺨을 세게 후려치고 다시 고개가 돌아오자 한 번 더 쳐낸다. 마찰음이 꽤 크다.)

     

    S/ (뺨으로 날아든 손에 새까맣던 시야에 불이 일었다. 두 번의 번쩍임. 답을 내놓기 전, 여린 살이 터져 흘러나온 피가 섞인 침을 옆으로 뱉어냈다.) 아버지라고 부르기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F/ 그래. 그게 니 자리야. 하지만 사람들은 네 녀석이 내 아들이라고 수근, 수근 거리는데? 응? (턱을 쥐곤 올린다.)

     

    S/ 네. 수군댑니다. 도련님들을 제외하곤 모두가 수군거립니다. (쥐어 잡힌 턱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익숙함과 떨림은 반비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알면 알수록 닥칠 고통이 더 확실히 보이는 것이다. 습관처럼 이를 꽉 깨물었다.)

     

    F/ 도련님. 너한테 도련님이 중요한가? 그 모든 사람들의 수근거림보다? (턱근육에 힘이 들어간 것이 보이자 잔잔한 목소리로) 어, 힘 풀어. 풀어. (약하게 두어번 볼을 툭툭친다. 턱의 떨림이 아까보다 약해진 것이 느껴지자 다시 힘을 주어 뺨을 세게 내려친다.) 풀어야지 피를 볼 거 아니냐.

     

    S/ (중요하냐고, 중요하지. 남들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떠들어댄다 하여도 피를 나눈 자 심지어 나누어준 자 조차 외면한다면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기어이 피를 볼 요량으로 틈을 놓치지 않고 내려치는 것에 상체가 옆으로 고꾸라졌다. 얼얼한 턱이 다물어지지 않아 삼키지 못한 피가 침과 함께 턱밑으로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주인님이라는 남자가 가진 것은 창고 가득 채운 술병들, 벌레가 들끓게 만드는 돈다발과 자식이길 거부하는 자식들 그리고, 저 빌어먹을 힘 밖에 없는 것이다. 얼마나 더 맞아야 하지.)

     

    F/ 억울하냐? 그대로 있어. (상체가 숙여져 나뒹굴어 진 꼴이 보기가 좋은 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뒷짐을 지고 주변을 빙글빙글 돈다.) 왜, 억울해? (눈빛은 살아있으니, 아직 뒤지진 않았는데. 반응이 느린게 아쉽단말이야. 꿍시렁거리며 상체를 옆으로 꺾어 숙이며 눈을 마주친다.)

     

    S/ (마주친 눈을 향해 침을 뱉고 싶었다. 할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아주 어릴 때부터 뺨을 맞아가며 배운 순종이란 그런 것이다. 다시 깊게 고개를 조아린다.) 없습니다. 억울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주인님을 사랑합니다.

     

    F/ 억울한 것은 없어야지. 그래, 이제 좀 알겠지? (아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다.) 네 놈이 여기서 어떤 존재인지.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어떻게 고개를 숙여야하는지. (손을 떼곤 손가락 끝으로 머리를 툭툭-아프지는 않지만 기분이 나쁠 법하게- 친다.) 내 말에, 어떤 식으로 반응을 해야 할 지.

     

    S/ 네. 저는 바닥입니다. 또한, 바닥을 기어 다닙니다. 종놈입니다. 하인입니다. 저는. 주인님 저택의 수증기입니다.

     

    F/ 그래? 그렇구나. (감흥 없는 표정으로 훑고는 문으로 걸어간다.) 스메-르 쟈코프! (킬킬 웃으며) 너는 수증기라고 했지?

     

    S/ (안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고개를 들어 확인한다. 뒷모습. 뒷통수. 머리. 머리. 머리.) ... 네, 그렇습니다. 주인님.

     

    F/ 그러면 다른 방식으로 들어와야겠구나. 수증기는 어디로든 들어갈 수 있으니 말이야.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것이 특기이므로, 문의 손잡이를 잡고는 잡아당겨 문을 닫는다. 어느 정도의 빈틈이 남았을 때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문으로 들어오면 다음엔 다리를 분질러버릴거다.

     


     

    옆으로 고꾸라진 채로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의 밤은 자신에게 열린 문은 없다. 문을 열어줄 사람 또한 없다. 알고 있다. 지독할 만큼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참을 그 문을 노려봤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아주 조금의 틈이라도 열어주지 않을까 그런 헛된 기대를 하면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비틀린 채 엎어진 몸을 일으켰다. 얼굴은 거울에 비추어 보지 않아도 엉망 그 자체임에 틀림없었으나, 팔다리는 멀쩡했다. 하인의 잡일거리를 배려해준 주인님의 뜻일까. 사려 깊어라. 웃음이 샜다. 말라 붙어가던 입술이 다시 찢어져 피가 나는 것을 소매로 북북 닦아내었다. 피가 섞인 침을 문 앞에 뱉어내고 걸음을 옮겼다. 느린 걸음으로 담벼락 안을 채우는 것들을 모두 둘러보았다. 뒷 편 오래된 정원까지. 알렉세이가 돌아온 후 돌봄의 은혜를 받은 정원은 꽤 구색을 갖추어 나갔다. 어울리지 않아. 주인님이 계신 곳에 꽃밭 같은 건. ... 생각을 멈추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죄 뽑혀있는 작은 꽃나무들 그리고, 부러진 가지들, 억센 줄기, 가시들에 상처로 범벅이 된 손이었다. 정성이란 하룻밤에 다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당신의 방을 찾았다. 깊어가는 밤에도 촛불의 일렁거림이 창문에서 흘러나왔다. 날이 밝으면 물거품이 된 자신의 은혜를 목도하고 좌절하는 알렉세이의 뒷통수를 또 내려다보고 있을까. 역시나 보고만 있을까.

    잠을 청할 곳을 찾아야 했다. 잠들지 않더라도 몸을 뉘일 곳 정도는 필요했다. 의지와 상관없이 굽어가는 손등의 근육이 걸음을 재촉했다. 때가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빌어먹을, 하필이면. 점점 굳어가는 한 쪽 다리를 질질 끌어 도착한 곳은 별채 옆 헛간이었다. 담벼락과 가장 가까운 곳. 수 년전에 자신과 함께 버려진 곳.

    녹이 슬다 못해 제 색은 단 한 구석도 남아있지 않은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 묵은 건초더미에 몸을 던지듯 누웠다. 제정신을 붙잡고 있었던 건 거기까지다. 사정없이 떨려오는 몸에 건초더미에 더 파고들었다. 벌레 따위가 온 몸을 기어다니는 느낌이었다. 실재하는 지 아닌 지 모를 벌레들에 몸서리를 쳤다.

    벌레들이 피부 위로도 모자라 내장까지 파먹겠다고 강제로 턱을 벌렸다. 입꼬리가 찢어질 만큼 크게 벌어지는 입을 다물 방법은 없다. 내장이 뒤틀리는 느낌에 원치 않는 괴성과 함께 삼키지 못하는 침이 흘러나온다. 안을 잠식당한다. 보는 것은 보이지 않으며, 볼 수 없는 것들이 눈 앞을 꽉 채운다.

     

    그게 네 자리야. 이제 좀 알겠나.

     

    주인님의 일갈이 메아리친다. 내 자리. 바로 여기. 세상에 나오자 마자 어미를 죽인 천덕꾸러기. 첫울음보다 괴성을 먼저 질러낸 간질병에 걸린 하인새끼. 그게 나다. 파벨. 파벨 스메르쟈코프. 이름부터 악취로 모자라 시취가 나는 새끼. 근데, 시체에서 계피향이 나던가. 머리마저 죄 갉아먹힌 걸까. 괴이할 만큼 비틀어진 몸을 하곤 마구 웃어제꼈다.

     

    발작의 끝이 다가오는 것을 예감한다.

     

     

     

    까무룩 감겼던 눈을 다시 뜬 건, 날이 밝은 지 한참이 지나서였다. 문을 열고 다시 나왔을 때에는 해가 이미 머리꼭대기 위를 지나고 있었으니까. 밤새 몸을 지배했던 경련은 사라지고 없었다. 보다 가뿐해진 두 다리를 바쁘게 움직여 현관으로 향했을 때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샤, 파툴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를 향한 것이 아님을. 실제로도 그러했다. 나 따위가 아니라 다른 이를 부르는 목소리였다. 근데. 근데도. 미소가 지어졌다. 모르게 깔깔 웃고 싶었다. 입 안팎의 상처가 열을 내며 날뛰는 것은 상관이 없었다. 당신에 관해서는 어떤 고통도 상관이 없었다. 당신은 어떨까. 나에 관한 것에 무신경해질 수 있을까. '파벨' 그 이름을 생각하면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으면 좋겠다. 생각만해도 정갈하게 묶어놓은 타이를 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를 바란다. 정상적 사유를 전부 흔들어놓고 싶다. 무신경하려는 스스로가 당신 스스로에게 무시당했으면 좋겠다.

     

     

     

    종일 부은 뺨과 눈두덩이가 욱씬거렸다. 얼굴에는 수많은 조각난 근육들이 있다는데 그것들이 제각기 튀어올라 둥둥 거죽을 두드리는 기분이었다. 알았으니까, 제발 조용히 하라 소리치고 싶은 것을 참은 지 하루. 대부분의 고통이 그러하듯 해가 지고 어둠이 깊어지자 북소리가 더욱이 커져만 간다. 경험상 사나흘은 더 이 북소리와 함께 잠을 청해야겠지. 종일 마주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식탁의 옆에서 그 꼴로 서있을 거냐고 핀잔을 주는 그리고리씨 덕에 주방 구석에서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누구 하나 괜찮으냐 물어본 이가 없다. 늦은 하루의 시작에서 마주한 도련님 또한 그랬다. 당연한가. 폭력의 행위자를 집 안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러기에 물을 수 없겠지. 나는 그를 탓하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에 가깝다. 그저 날뛰는 통증이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문득 거울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은 몹시도 어색한 일임에도. 고통이 가득 머물고 있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형제가 아닌 형제들과 다른 외형을 가진 이유로 거울을 보는 행위는 거의 하지 않았다. 은연중에 알고 있는 것과 확인을 하는 것은 달랐으니까. 방 한 구석 뒤집어 놓았던 작은 거울을 들었다. 구석이 깨져나가 날카롭게 빛을 내는 그것을 들어 촛불 가까이에 앉았다. 예상대로 입술 주위로 말라붙어 부스러지는 피딱지와 비대칭으로 부은 두 뺨, 시야의 반을 가리고 있는 볼록해진 눈두덩이가 보기에 험했다. 부러 눈을 부릅뜨고 그 안을 바라보았다. 일렁이는 촛불에 시시각각 다른 빛을 내는 눈의 색을 들여다본다. 옅은 갈색도 올리브색도 아닌 것이 반짝인다. 당신처럼 푸른 눈을 가지면 좋았을까 잠시 생각해보다 거울을 다시 덮어놓았다.

     

     하나의 위안은, 당신의 동복형제 또한 당신과 같은 색을 지니고 있지 않음에서 온다. 이어져 있으나 같지 않다. 나도, 당신도, 알렉세이마저도. 입술주변이 찢어져 다시 얼얼해진다.

     

     아아. 내가 지금 웃고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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