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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исьма : 이반이 스메르에게 1letters 2020. 3. 15. 23:26
꼭 편지지 위에 쓰인 것만 편지라고 할 수는 없어. 하지만 받는 이가 읽지 못하는 것도 편지라고 할 수 있을까? 스메르쟈코프, 이 글은 네 것이지만 동시에 그렇지 않기도 해. 여기서 네 역할은 일종의, 그래. 종이 같은 거야. 종이는 자신 위에 쓰이는 글을 이해하지 못하지. 너는 내 사고를 잠시 도울 뿐이야. 이 편지는…… 내가 어떤 커다란 생각을 완성하는 데 있어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하자. 벽난로의 그을음, 욕탕의 수증기, 눈 녹은 후의 흙탕물처럼.
어차피 너는 글을 읽지도 못하잖아. 그렇지?<이반 뇌제 이야기>
오래 전 이반이라는 이름의 황제가 살았다. 그의 업적은 이전의 어떤 왕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했다. 그는 스스로를 '모든 러시아인들의 차르'라고 불렀으며, 감히 거기에 이견을 표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사람들은 경외심을 담아 그를 그로즈니- 즉, 이반 뇌제라고 불렀다. 황제는 러시아 전체를 공포로 다스렸다. 그의 손짓에 따라 도시가 사라지고 또 생겨났다. 이반이 지도의 어느 변두리를 짚으면, 다음 날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황제도 첫 아내와,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만은 지독히 사랑했다. 그 아들에게 자신과 같은 이름을 붙여 줄 정도였으니까. 아버지 이반이 아들 이반을 무릎에 앉히고 귀여워해 줄 때마다, 사람들은 '뇌제도 사랑을 한다'며 신기해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났더라면, 사람들은 이반을 별난 황제 정도로만 기억했을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 이반은 아들 이반의 아내, 그러니까 황태자비를 마주쳤다. 황제는 그의 차림새를 두고 끔찍한 욕설을 퍼부었고, 끝내는 폭력까지 휘둘렀다. 그 때 뇌제가 황태자비가 임신을 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가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아이가 유산되었다는 것만이 분명한 사실이다. 자식을 잃고, 소중한 아내가 심하게 모욕당하기까지 한 아들 이반은 분명 몹시도 분노했으리라.
황태자는 아버지를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당신은 영원히 편히 잠들지 못할 것입니다. 매일 밤 침대맡에 당신이 죽인 이들이 찾아올 것이고, 새벽이 밝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황제가 아들의 저주에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역사는 아버지 이반이 그 자리에서 아들 이반을 때려죽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스메르쟈코프에게.
나는 고해소에는 가지 않아. 신을 믿지 않으니까. 존재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어떻게 용서와 이해를 바라겠어. 정신병원 따위에도 가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대신 너에게 이 편지를 쓴다. 읽지도 못할 테니 편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
얼마 전 료셰치카를 만났어. 이렇게 말하면 넌 누군지도 모르겠지.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까라마조프, 내 유일한 동생이야. 우리가 어디서 만났는지, 어떻게 마주쳤는지는 모르겠어. 우연이겠지. 신이 존재한다면 직접 안배했으리라 여겨지는 그런 황홀한 우연 말야. 알료샤는 내게 이렇게 물었지. 형은 아직도 신을 믿지 않아? 그애는 내가 신을 믿길 바란다고, 매일매일 나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어. 그 말을 듣자마자…… 어떤…… 그래. 충동이라고 하자. 사악한 충동이 나를 뒤흔들었지. 난 그가 곤란해하는 걸 보고 싶어졌어. 나는 그가 이기적인 사람으로 자란 것이 분명하다고 매도했지만, 알료샤는 화를 내지도, 마음이 상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지. 그냥 웃기만 했어. 자기가 믿는 걸 나에게 권한다는 건 나를 그만큼 사랑한다는 뜻이라면서…….
나는 알렉세이에게 뭘 기대했던 걸까. 그애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 있기를 바랐던 걸까. 몇 년 가까이 만난 적도 없으면서, 왜 알료샤만큼은 날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멋대로 믿어 버렸던 거지? 나는……. (편지는 여기서 끊겨 있다.)
스메르쟈코프에게.
<이반 뇌제> 이야기를 어떻게 끝마치면 좋을까, 사실 나는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어. 자기 손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때려죽인 황제는 말년이 되어 수도사를 자처해. 그는 외딴 별장에 은둔하며 아무도 만나지 않았어. 이반을 모시는 하인들은 그 별장에 유령이 산다고들 떠들어댔지. 죽은 황태자의 저주를 기억해? '당신은 영원히 편히 잠들지 못할 것입니다. 매일 밤 침대맡에 당신이 죽인 이들이 찾아올 것이고, 새벽이 밝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그 말이 정말로 이루어졌는지, 황제는 죽는 그 날까지 매일 밤 아들의 모습을 본 거야.
어쩌면 그건 저주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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