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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너…… 그래. 스메르쟈코프, 맞지?
S/
부르셨습니까, 도련님.
V/
심부름을 하나 시킬까 해. 시내에 다녀오는 일이야.
S/
저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있습니다. 무슨 일인지요.
V/
잉크가 다 떨어졌어. 편지를 쓸 종이도. 잉크는 파란색 한 병, 검은색 두 병이 필요해. 10루블을 줄 테니까 남는 건 가져도 좋아.
S/
편지를 쓰십니까.
V/
그래. 내가 쓸 물건은 직접 고르는 편을 좋아하지만…… 당분간 외출을 못 하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어. 다 외웠나? 아니면, 적어 줘야 할까.
S/
쉬는 게 좋으실겁니다. 도련님은 아프시기에 그것이 당연합니다. ... 잉크 파란색 한 병, 검은색 두 병과 편지를 쓸 종이. 맞으신가요.
V/
넌 의사가 아니야, 스메르쟈코프. 이 집의 하인이지. 그러니 넌 나에게 그 어떤 충고도 할 수 없어. (잠시 고민하다 덧붙인다.) ……거기에 버찌 잼 한 병도.
S/
의사가 떠나며 그리고리씨에게 당부했던 것을 읊은 것이니, 다르지 않습니다. ... 쉬고 계십시오. 말씀하신 것들을 사오겠습니다.
V/
남이 하는 말들을 전부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어, 스메르쟈코프. 그 남이 시골 의사일 때는 특히 더 그렇지. 파블로비치 박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간 뇌에 곰팡이가 피어 버릴 거야. 어쨌든, 이제 가 봐.
아, 잠시만. 잊은 게 있어.
해가 지기 전까지는 돌아와야 해. 이해하겠어?
S/
어둠이 내리기 전. 돌아오겠습니다.
V/
스메르쟈코프, 이리로 와.
S/
부르셨습니까, 도련님.
V/
잠시 외출을 할 거야. 돌아올 때까지 방을 정리해 놓도록 해. 자연과학 서적은 왼쪽 트렁크에…… 아니지. 넌 글을 못 읽으니까, 이렇게 설명해도 소용없겠군. 붉은 표지의 책은 왼쪽, 나머지는 오른쪽 트렁크에 넣어 둬. 책상 위는 건드리지 말고, 위에서 네 번째 서랍에 있는 종이는 전부 버려.
S/
(빠르게도 지나가는 말을 귀에 담으며 당신이 선 뒤, 열린 방문 틈 사이로 어지럽혀진 책상 주변을 훑고는 고개를 숙인다.) 빠짐없이 정리 하겠습니다. 더 시키실 일은?
V/
……그 종이들은 그냥 버리지 말고 꼭 태워 없애. 벽난로든 아궁이든 상관없으니까. 그게 다야. (그대로 방을 나서려다 멈칫 뒤를 돌아보았다.) 스메르쟈코프?
S/
네번째 서랍에 있는 것들 말씀이시죠. 네, 없애는 것은 쉬우니 걱정은 마십시오. (옆으로 물러나 당신이 지나갈 길을 열어둔다. 앞을 스쳐가는 것을 느끼곤 숙였던 고개를 들자마자 부르는 소리에 그대로 눈을 마주한다.) 당부할 것이 남으셨습니까.
V/
잉크와 종이를 사고 남은 돈으로는 뭘 했지? (무심코 입 밖으로 흐른 말에 스스로도 놀란 듯 눈을 깜박였다.)
S/
(당황이 드리운 낯을 빤히 바라보다 입을 뗐다.) ... 아직 저에게 있습니다. 남은 것이 아니라, 도련님이 제게 주신 것이죠.
V/
난 너에게 아무것도 준 적이 없어. 일을 맡겼을 뿐이지. (괜히 목소리가 뾰족해진다. 잠시 문설주를 짚고 숨을 고르다가, 안경을 고쳐 썼다. 시야가 분명해지자 마음이 가라앉는다.) 남은 것이든 받은 것이든 마음대로 생각해. 사유는 자유니까. 의사가 찾거든 잔다고 하고. 알겠어?
S/
그날에, 남는 것은 가져도 좋다 하셨고 저는 그대로 가졌을 뿐입니다. ... 여기에 다른 뜻은 없습니다. (부러 맹한 얼굴로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다녀오십시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