диалоги 4
S/
그냥 궁금했다.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식사 시간임을 알리는 그리고리의 목소리가 저택 곳곳에 스며들고 난 후,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은 탓에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길 바랐던 것도 같다. 헝겊뭉치는 일찍이 작은 자루에 담아 허리춤 옆에 매달아 놓았다. 준비는 되었고, 마지막. 당신이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잘 차려진 식탁 앞으로 당신의 모습이 나타났을 때, 나는 기뻤다. 기뻐서 크게 웃고 싶었다. 그것을 참느라 꾹꾹 아랫입술을 몇 번이고 짓씹어댔다.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 물러나 기척을 죽인 채, 계단을 올랐다. 외출을 할 때가 아니고서야 문단속에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었기에 열쇠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다른 곳을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허나, 외출은 손에 꼽을 듯 적었고 가끔씩 버려진 정원으로 향할 때에도 당신은 발 밑은 신경쓰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러했다. 그러니 여기, 이곳, 당신의 방이 최적의 장소임은 틀림이 없었다.
잘 정돈된 시트를 손을 넓게 펴 한 번 쓸어보곤 자루를 꺼냈다. 부분부분 붉게 물든 헝겊뭉치를 펼쳐내자, 작은 고양이의 얼굴이 보였다. 목 아래 부분은 이른 새벽, 헛간 옆 구석에 묻어두었다. 그래서 지금 손에 들린 건, 목의 윗 부분 그것이 다였다. 굳은 피가 말라붙어 더러워진 헝겊은 주머니에 쑤셔넣고 다른 헝겊을 꺼내 시트 위로 깔았다.
식사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가늠해보며, 나즈막한 햇빛이 내려앉은 시트 위로 머리를 내려놓았다. 구석에 놓인 향초들을 켰다. 햇빛에 가린 촛불들이 희미하게 타올랐다.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궁금함은 곧 해결될 것이다. 방금까지 입 안으로 넣은 음식들을 게워낼까, 심한 욕지기를 뱉을까. 당신도 다른 이들과 같을까.
나의 오랜 이 의식에 당신은 무어라 할까. 콧노래의 틈으로 질문들이 흘러나온다.
아. 당신이 돌아온 후로는 저택은 즐거움으로 가득찬 것이다.
V/
나이프와 포크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 접시가 테이블에 닿아 달그락거리는 소리, 먹고 마시고 씹고 떠드는 소리……. 아버지라는 인간과 함께하는 식사는 늘 그렇듯 최악이었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테이블 저편에서 해죽거리던 하인 하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반도 비우지 않은 접시를 내버려 둔 채 방으로 돌아가는 계단을 올랐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기쁠 따름이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달콤한 내음이 확 풍겼다. 방에 드나든 사람은 없으니 향수는 아닐 것이다. 한 걸음 안으로 발을 들이자 곳곳에 켜져 있는 향초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지 몰라도 쓸데없는 짓을…… 생각은 거기서 뚝 끊긴다. 침대 위에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정갈하게 접어 놓은 헝겊, 보란 듯 이쪽을 노려보는 머리. 고양이다. 아니, 고양이었던…… 것이다. 몸에 붙어 있어야 할 머리만이 여기 침대 시트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천천히 안경을 벗은 다음, 손수건을 꺼내 닦았다. 해야 할 일은 명백했다. 이런 일을 저지를 사람은 이 저택에서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나는 그리고리를 불렀고, 그리고리는 마르파를, 마르파는 식당에서 뒷정리를 하고 있던 스메르쟈코프를 불러왔다. 열린 내 방문 앞에 선 그는, 이게 다 도통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덮지도 않은 채 입을 연다.
부르셨습니까, 라고 말할 셈이면 그만둬.
여전히 시선은 책에 머무르고 있다.
넌 네가 여기에 왜 왔는지 알고 있어.
S/
뒷통수에 대고선 마르파부인이 급한 목소리를 뱉어내기에 손에 쥐고 있던 접시들을 다 놓칠 뻔하였다. 고민도 망설임도 없이 나를 지목하여 찾았을 당신의 표정은 어떠할까 계단을 오르며 상상했다. 직접 찾아왔으면 더 좋았을텐데, 귀하신 도련님이 그럴리가 없지. 천한 종놈이 움직이는 것이 맞았다. 입을 떼기도 전, 말문을 막는 목소리에 한참 말을 고르다 모르게 웃었다.
제가 할 말은 도련님께서 먼저 꺼내셨으니, 저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V/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겠다?
페이지를 고르는 손길이 느긋하다.
네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해 봤어. 기쁘게 여기도록 해. 내가 어떤 현상이 아닌 그 주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일은 드무니까. 내 가설은 크게 두 개야. 하나, 어떤 이유에선지 너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이 집을 떠났으면 했고, 동물의 시체를 가져다 놓음으로써 겁을 주려고 했다. 만약 그렇다면 넌 실패했어. 난 오래된 미신 따위 믿지 않거든. 두 번째는 그 반대의 경우인데. 너는…… 나에게 일종의 호감을 가지고 있어. 어떻게든 독대를 할 기회를 얻고 싶었던 거지. 어느 쪽일까?
S/
둘 다일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도련님께서는 어느 쪽에 더 기울어 계십니까. 저는 당신의 말이라면 따를 수 있습니다. 제가 도련님에게 악감정과 호감 중 어느 것을 품었길 바라십니까.
V/
파벨 스메르쟈코프, 잘 들어. 나는 그 둘 중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 네가 나에게 악의를 품었던, 그 반대건, 내겐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까. 왜냐하면 네 감정이나 사유 같은 것들은, 그래. 네가 생각할 수 있다면 말이야. 나에게 그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어.
책을 덮어 내려놓았다. 적선하듯 문간으로 시선을 던지자,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눈과 마주쳤다. 이번에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기회를 주고 있어. 어떤 기회일까. 그건 네가 생각할 문제야.
S/
파벨, 파벨, 파벨. 당신의 입술에서 나온 그 이름만으로 내 의식은 빛을 얻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미친새끼, 또라이, 더럽고 추잡한 버러지 따위가 아닌. 파벨 스메르쟈코프. 버릴 수 없지만 버려진 지 오래인 나의 이름.
사뭇 들뜬 상태에서 마주한 당신의 눈은 온도가 낮았고 꽤나 매서웠다. 나와 당신의 시선이 미지근하게 섞여가는 것을 느끼며 발을 디뎠다. 점차 책상으로 가까이 다가서는 것에 눈가가 한 번 움찔했으나 다른 제지는 없었기에 바로 그 앞까지 설 수 있었다.
하인에게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찾아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아주 낯설고 또 생소한 경험입니다. 제게 생각할 기회를 주신다는 건 저의 뜻대로 해도 된다는 말씀인가요. 어떠한 것도 도련님께는 영향이 미치지 않을테니까 말이죠. 정말 어떠한 것도요.
V/
그는 침대 쪽이 아닌 책상으로, 다시 말하면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애써 자리를 피하지도, 눈을 돌리지도 않는다. 오직 내 스스로가 했던 말을 되새길 뿐이다. 그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며, 어떤 말을 뱉고 어떤 것을 행동에 옮기는지, 그런 것들은…… 정말이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어느새 바짝 가까이 붙은 몸에서는 희미하게 계피 냄새가 났다. 방금까지 부엌에라도 있었던 걸까. 눈썹이 찌푸려졌다.
난 네게 사유할 수 있는 자유를 준 거지, 자유의지를 준 게 아니야. 그 둘은 명백히 달라.
S/
사유함이란, 의지를 낳습니다. 또한, 행동은 의지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도련님?
책상을 사이에 둔 채 상체를 숙였다. 눈에 띄게 굳어가는 표정에도 시선을 돌리지 않는 당신이 반가웠다. 고개를 숙여 책을 읽었던 탓일까 콧등을 미끄러져 내려온 안경의 코를 손을 뻗어 올려주다 그대로 잡아 빼버렸다. 굳었던 인상에 살풋 당황이 스민다. 코끝이 닿을 듯 마주하고 작게 속삭인다.
잊지 않으셨겠지만, 저택은 주인님의 것입니다. 저 또한, 그 주인님의 것이지요. 사실 허락이란, 도련님의 소관이 아니란 말을 하고 싶은가 봅니다.
당황스러움은 잠깐이었는지, 닿은 것에서 도망치듯 급하게 물러나는 것의 뒷목을 낚아채고는 그대로 입을 맞췄다. 격하게 밀어내는 것에 순순히 밀려주며 당신의 아랫입술을 물어뜯고는 놓아준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짧게 붉은 자국이 번진다. 씨발. 그 날에 당신이 눈을 떴으면, 이랬을까.
V/
가까워진다. 불편할 정도로, 또, 귀를 기울이면 맥이 뛰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마주한 얼굴에서는 불쾌할 정도로 아무 것도 읽어낼 수가 없다. 콧등에, 아니, 안경에 손이 닿는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두 눈에 강렬한 이채가 서렸다. 귀에 들어오는 말들을 이해하기도 전에 본능이 달음질했다. 당장 도망쳐야 한다는, 아니면 적어도 고개라도 돌려야 한다는 그런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행동으로 실천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입술이 닿았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 격렬한 구토감이 치밀었다. 그가 정성껏 빚은 피로조크 파이를 먹었을 때보다 더한, 꼭 처음으로 악마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와 같은……. 어지러운 탓에 입술이 찢긴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입가를 닦자 손등에 뻘건 생피가 번졌다.
나가.
아니지, 급하게 손수건을 찾아 상처를 덮었다. 다른 손으로는 침대 위 머리를 가리킨다.
저걸 갖고 꺼져 버려.
S/
파리한 낯빛이 적의를 뿜어내고 있었다. 얼굴을 가린 손수건과 손을 느리게 훑다가 허리를 한 번 숙이고는 침대로 발을 옮겼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열은 이제 없으신 모양이라서요. '그 날 밤'에는 꽤나 뜨거웠는데 말입니다. 그 입술이.
빈 자루에 헝겊째로 고양이를 담아 넣었다. 몸을 묻은 옆자리면 되겠지. 자루의 입구를 묶을 동안 당신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한 것에 가까웠달지. 돌아보자 여전히 의자에 앉은 상태인 당신이 있었다. 굳어서는 종전보다 핏기가 가신 얼굴에 무언가 확신을 던져주고 싶었다. 혹시, 설마 따위가 아니라. 지금 그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게 허상이 아니라 진실이라 말해주고 싶었다.
저런. 기억에 없나봅니다. ... 바뉴쉬카.
V/
그 날 밤…… 생각은 열차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 앞에 뛰어든다 해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손수건을 쥔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시야가 흐릿해진 것은 아까 벗겨진 안경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알료쉬카.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이름이 입술 밖으로 새어 나갔다. 그 날 밤, 이반 표도로비치는 열병을 앓았다. 병중에 동생의 얼굴을 한 악마를 보았다. 고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전에도 종종 현실에선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듣고는 했으니까.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악마는 자신에게 입을 맞췄고…… 그리고…… 저 이름으로 나를 불렀다. 그러니까 저 녀석은, 그날 일들이 아주 꿈은 아니었다고, 침대 옆을 지키던 이는 악마도, 알료샤의 환상도 아닌 저 빌어먹을 하인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의자에 걸쳐져 있던 외투만을 들고 방 밖으로 뛰쳐나간다. 어디로 갈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런 것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S/
처음에는, 모른척을 하나 생각을 했었다. 금세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지만. 그 밤의 상대에 대한 기억의 일부분이라도 남아있다면 자신을 몇 차례나 이 방에 불러 세워두지 않았을 것임이 확실했기에. 그리고 지금. 도망간 당신을 보며 의심하나 없는 확신을 하는 것이다.
꽤나 충격이었나. 급하게 빠져나간 자리엔 벗겨낸 안경만이 놓여있었다. 금속의 테를 잡아들곤 창문으로 다가섰다. 창틀 사이로 저택의 울타리를 빠져나가는 당신의 뒷모습이 보였다. 거리가 멀어 희뿌옇게 흐려지는 뒷통수에 당신의 안경을 콧등에 걸쳐보았으나 초점이 맞질 않아 소득은 없었다.
다시 벗어내고 투명한 유리알을 들여다보았다. 닦은 지 얼마 안되었는 지 먼지 하나 묻지않은 유리 위로 엄지손가락을 문대었다. 반투명한 흔적들이 유리알에 덕지덕지 내려앉았다. 만족스레 웃으며 책상 위에 다시 안경을 내려놓고 방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기다리기엔 하인이 할 일들이 집 안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쉬움만을 자리에 남겨두고 방을 빠져나왔다. 당신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는 만약이란 가정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님을 찾아오는 인간들은 대부분 목적이 있어서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끈적거리는 공기로 들어찬 저택에 발을 들일 이유가 없다. 허나, 당신은 아직 무언가를 받거나 이루어낸 게 없는 것이 없으니 돌아올 수 밖에 없겠지. 또한, 그 끈적이는 피는 당신 또한 가지고 있으니, 이끌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곳은 더 끈적거리는 불유쾌한 인간이 되기 위한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어서 내려가서 당신이 돌아올 때를 반겨줄 차를 골라야겠다. 피로조크에는 무엇을 넣는 것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