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logue

диалоги 2

SMER/VANYA 2020. 3. 8. 21:35

V/

까라마조프 가의 저택에 도착한 그 날, 그러니까 스코토프리곤옙스크에서의 첫날 밤. 내게 열병이 재발했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신경이 예민한 축에 속했고, 막 길고 지치는 여행을 끝마친 참이었으니까. 그리고리 노인은 몹시 난처해하더니 날이 밝는 대로 의사를 부르겠다고 말했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 밤은 내 스스로 견디어 내어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내게 주어진 방은 이 집의 다른 모든 방들이 그렇듯 멋없이 커다랗기만 했다. 손을 짚는 곳마다 습기가 묻어나 눅눅했다. 낯선 침대에 눕자 천장의 무늬가 빙글빙글 돌았다. 뺨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대로 익숙한 꿈을 꿀 것만 같다.

 

내게는, 이반 표도로비치 까라마조프에게는 은밀하고 수치스러운 비밀이 있다. 비유하자면 배꼽 같은 것이다. 이미 떼어 낸 것의 흔적이므로 새로이 지울 수도, 아물게 할 수도 없다. 이렇게 열이 끓는 밤이면 나는 이 배꼽에 대해 생각한다. 두 발로 걷는 이들 모두에게 배꼽이 있듯 모든 사람들에게도 비밀이 있다. 그렇지 않니, 알료샤? 그렇게 물으면, 내 침대 옆을 지키고 선 악마가 대답한다. 그래. 모두 비밀이 있어. 그럼 나는 또 이렇게 묻는 것이다.

 

사랑하는 알료쉬카, 내 동생. 너는 왜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니?

 

 

S/

고통에 익숙한 사람은 다른 이의 고통에 무감해진다지만, 오히려 그 반대인 사람도 있었다. 기민해진 감각들이 옅은 소리를 전해왔다. 낮은, 짧고도 긴 호흡으로 뱉어내는 앓는 소리에 먼저 들여다 본 것은 그리고리의 방이었다. 잠에 든 것인 지 인기척하나 들려오지 않음에 발을 옮겨 벽장을 찾았다.

 

고통의 주인은 알고 있었다. 다시금 오늘부터 그가 주인이 된 방의 위치 또한 알고 있었다. 마른 면포와 차가운 물에 젖은 영견을 챙기는 움직이는 다리와 팔에는 망설임은 없었다. 오히려 들떠있는 기분이 전신을 지배했다. 오늘의 밤은 꽤나 오랜만에 병시중을 들 것 같았음에.

발걸음에 맞춰 쇳대들이 흔들려 쇳소리를 낸다. 고요한 밤을 채우는 날카로운 전주곡임에 틀림이 없었다.

 

넓은 방은 열병의 열기로 미지근한 채였다. 등 뒤로 닫히는 문을 돌아보다 다시금 잠구었다.

 

...알료샤.

 

섞이는 숨에 흘러나오는 이름에 고개가 절로 모로 꺾이었다. 당신의 병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 허나, 이 저택엔 당신이 필요한 게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은. 다가서지 않은 채로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내다보았다. 밤이면 더욱 짙어지는 안개로 모든 것은 숨겨지고 또 숨어들었다. 같은 이치이다. 앞을 분간할 수 없게 만드는 저 안개처럼 당신의 눈을 가리고 그런 척 연기를 하면 될 일이었다. 부옇게 이는 수증기는 꼭 자신과 같았고 또 병자를 돌보는 것엔 익숙하기에. 발을 옮겨 침대 곁으로 다가서 바닥에 꿇어앉는다. 젖은 영견을 짜며 무슨 말을 건넬까 입 안에서 혀를 한 번 굴리다 당신이 바라는, 단 한 번도 당신을 향해 입 밖에 낸 적 없는 하나의 단어를 뱉어낸다.

 

....

 

 

V/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린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아까 문단속을 하지 않았던가? 열감으로 흐려진 머리는 자꾸만 생각의 꼬리를 놓쳐 버린다. 팔을 뻗어 허공을 휘저었다. 말라 갈라진 입술에서 한숨처럼 이름이 새어나갔다.

 

알료샤, 너구나.

 

대답 대신이라고 하면 좋을지, 인기척이 느껴진다. 우유를 푼 물에 머리를 담근 것처럼 시야가 불분명했다. 침대 옆으로 팔을 뻗으면 만져지는 것이 있다. 사람의 팔, 그 다음엔 어깨. 목덜미, , 마지막으로…… 손등으로 뺨을 쓰다듬었다.

 

얼굴이 거칠어졌어. 어릴 적엔 이러지 않았는데.

 

 

S/

짚어오는 손에 묻은 다정에 욕지기가 튀어 나갈 뻔 했다. 익숙치 않은 것에 들끓는 뇌를 식히곤 싶어 당장이라도 손에 쥔 영견을 뒤집어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주한 지 꽤나 오래되었으니까. ... 형은, 여전하구나.

 

뺨에 닿은 열 띤 손을 잡아내리곤 조심히 닦아낸다. 궂은일이라곤 해 본 적 없는 고운 손등과 곧은 손가락을 훑어내고는 펜대가 닿는 자리에 잡힌 굳은 살은 부러 한 번 씩 더 짚어가며 느리게 닦는 것이다. 체온보다는 한참은 낮은 것이 닿자 흘리는 신음에 눈을 굴려 바로 떠지지 못하는 눈꺼풀을 확인하곤 마주 잡는다.

 

손을 잡는 것도, 오랜만이지.

 

 

V/

여전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살갗에 찬 것이 닿았다. 반사적으로 움칫 손을 오므렸지만, 손등에 이어 손가락 사이를 기어다니는 몸짓은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가서야 그것이 젖은 수건임을 깨닫는다. 알렉세이, 그 애가 나를 돌보아 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얼굴은 이미 기억 속에 흐려져 버렸다. 여기 남아 있는 것은 지나친 다정함뿐이었다.

 

너야말로 여전하지. 알료쉬카. 헤어질 때 악수도 안 하려고 했잖아, . 그러면 내가 가 버릴 걸 알았으니까.

 

 

S/

...여전히 다정하다고. 그 소리였어.

 

손을 옮겨 소매가 넓은 잠옷을 걷어올리곤 손목을 지나 마른 팔을 쓸어낸다. 당신과 나 사이에 위치한 축축한 물건 따위는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을 걷어내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다시 보게 되는 날도 올 줄 알았어. . 나는 알고 있었어.

 

 

V/

거짓말은.

 

습기가 손목을 넘어 팔 안쪽으로 스며들더니 팔꿈치 안쪽의 얇은 살갗 위에 오래도 머물렀다. 문득 너를 비난하고 싶어진다. 나는 결국 치밀어오르는 말들을 그대로 쏟아내 버렸다.

 

답장을 안 했잖아. 넌 한 번도 답장하지 않았어. 난 예핌 어르신을 통해 네 소식을 전해 들어야만 했어. 정말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괜찮아. 알료쉬카, 너는 내 하나뿐인 동생이야. 내 유일한 형제야.

 

잘 보이지도 않는 눈은 감아 버렸다. 대신 어머니를 꼭 닮은 눈, 아마빛 머리칼을 떠올렸다. 희미한 웃음이 입가에 걸린다.

 

내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사랑하는 건 너야, 알료샤. 넌 그걸 알고 있어야 해.

 

 

S/

우리는 서로의 자리에서 해야할 일이 있었잖아. 어르신에게 소식을 전한 건 모두 형을 위해서 였어. . 우린 형제야. 떨어져 있더라도 이어져 있었지. 계속. 계속말이야.

 

. 미약해진 인간은 이렇게나 쉽게도 진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얇은 천하나 걸치지 않은 마음이 비난에 섞어 투정을 뱉어낸다. 사랑. 사랑. 문득 키들거리는 웃음이 속에서부터 차올라 손에 쥐고 있던 수건으로 급하게 입을 틀어막고 몸을 수그렸다. 축축한 것을 입 안에 가득 채우곤 끅끅 넘어가려는 숨을 진정시킨다.

 

굽혔던 허리를 펴자 거두어진 손길과 끊어진 말에 좁아든 미간이 눈에 들어온다. 몸을 일으켜, 누운 자리 옆으로 걸터 앉고는 주름진 미간을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느린 손길로 곧은 이마를 쓸며 당신을 달랜다. 미간이 제 자리를 찾아가자 새 수건을 이마 위로 얹어준다. 좀전 당신이 했던 양을 따라하며 손등으로 뺨을 쓸었다.

 

나도. 형을 사랑해. 알고 있어?

 

 

V/

우리는 형제야, 그 말은 어떤 약보다 위안이 된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새 자리를 뜬 건가 걱정이 되어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키려던 때였다. 침대 한 쪽이 무게로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마, 눈썹 사이, 이어 뺨을 쓰다듬는 손길이 축축하고 다정하다. 이런 밤이라면 매일 열이 올라도 좋았다. 상상했던 것보다도 거칠고 투박한 손이 그리듯 얼굴을 매만지고…… 나는 수건 아래서 눈을 뜬다. 여전히 보이는 것은 없다.

 

, 알료샤가 아니구나. 그 애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잘난 하나님 이외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

 

 

S/

그래서 형은 신이 미워? 아니, 밉다라는 표현은 아이같다. 미안.

 

팔을 들 힘도 없는 것일까. 아니면, 들지 않는 것일까. 눈을 가린 수건을 치워 곁에 앉은 얼굴을 들여다 볼 법도 한데 한동안 어떤 움직임도 답도 없었다. 시험하거나 시험받길 원하거나 어느 쪽이든 크게 상관은 없는 문제이다.

 

내가. 내가 아니라면. 나를 내보낼 거야? 밤은 길텐데. 형은 지금 아프고, 나는 돌봐줄 수 있어. 창 밖으로 안개가 짙게 깔렸어. 곧 이 방안으로 들이칠 걸. 잠들지 못하고 앓는 내내 밤안개 품에 있을 생각이야? 아니라면, 계속 닦아줄까. ... 형 몸이 뜨거워.

 

 

V/ 

원하면 언제든 눈을 가린 것을 치워 버릴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렇다. 신문에 이런 사설을 기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여기 이반 표도로비치의 비밀을 밝히려 합니다. 그는 신을 믿지도 않으면서 악마를 봅니다. 그 악마는 사랑하는 동생의 얼굴을 하고 있답니다.

 

아니, 미워하지 않아.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증오하겠어.

 

혀와 입술이 다 마른 탓에 목소리가 속삭이듯 작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더듬어 악마의 소맷부리를 끌어당겼다.

 

너를 믿고 싶어. 나를 떠나지 마.

 

 

S/

미약하게 끌어당기는 것에 버티지 않고 넘어가준다. 상체를 숙이고 뺨을 다시금 소중한 것을 대하듯 느리게 쓰다듬었다.

 

가지 않아. 원한다면. 그리고, 그 눈을 뜨지 않는다면. 난 여기, 형 옆에 있을거야.

 

존재를 부정당한 채로 믿음을 얻는 건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었다. 느껴보지 못한 것을 알게해주는 당신에 대한 갈구는 어쩌면 당연했다. 당신을 위해 흉내를 내보려던 사랑은 무엇일까. 알렉세이에게는 준 그 사랑이란 무엇일까. 느린 시간 속에서 머리는 꽤나 빠르게 굴러간다. 건넨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곤 눈을 가린 수건을 걷어내어 입으로 가져갔다. 축축한 것을 크게 힘주어 물자 입 안이 흠뻑 젖는다. 물기가 어린 입술을 메마른 당신의 것에 겹친다. 입술로만 여린살을 물었다 놓고 혀를 내어 다시 한 번 적신다. 아아. . 이런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해야지.

 

 

V/

경험론자들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손에 잡히는 것들만 믿는다. 이는 전제가 잘못된 선언이다. 인간의 경험을 신뢰할 수 있다는 보증은 누가 서 준단 말인가?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눈을 뜨지 않기로 한다. 감은 채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내 위로 덮쳐 오는 무게를, 시트 한쪽이 푹 꺼지는 것을, 그리고 입술과 혀를 적셔 오는 물기를. 또다시 광야를 떠올린다. 40일간의 답 없는 기도와, 아마도 눈 앞에 펼쳐져 있었을 사막을 생각한다.

 

알료쉬카.

 

맞닿은 입술은 뺨만큼이나 거칠었다. 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잠시 생각하지만, 그마저도 곧 다른 사고와 함께 흐려져 버린다.

 

어릴 때처럼 바뉴쉬카라고 불러. 그리고 네가 나의 병이라고, 이건 다 허상이라고 말해. 그러니까 이건…… 전부 허용될 수 있는 일이라고도 말해 줘.

 

 

S/

바뉴쉬카, 바뉴쉬카, 바뉴쉬카 ...

 

. 감히 불러볼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 입술 밖으로 흘러나간다. 뺨이라도 후려맞은 듯 볼이 얼얼해지는 감각에 안쪽 살을 짓씹어댔다. 퍼져가는 비린 고통의 맛으로 정신을 다잡는다. 피로 갈증이 이는 목을 축이곤 혀를 내어 달싹이는 입술을 다시 한 번 훑는다. 창백한 얼굴 위로 그인 붉은 선에 흡족함이 더없이 들어찬다.

 

이 밤에 증명이란 필요없어. 나는 형의 병이야, 허상이야.

 

마른 손을 잡아들어 마디가 깊숙하게 박히도록 뺨을 부빈다. 단 한 번도 자신을 향해 뻗어준 적 없는 손바닥 위로 핏빛의 흔적을 새기듯 남기곤 답을 잇는다.

 

허상의 밤에 나를 볼 때마다, 무엇을 바라. 바뉴쉬카. 입을 열어. 뱉어 내. ... 모든 것이 허용될 수 있는 밤이야.

 

 

V/

바뉴쉬카. 이름이 불릴 때마다 머리 꼭지에서부터 발끝까지 싸늘한 전율이 달린다. 세상에서 오로지 두 사람만이 불렀던 이름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부르지 않는 이름이기도 하다. 손바닥 위로 젖은 입술이 미끄러지는 것을 느꼈다. 무엇을 바라느냐고? 머릿속이 온통 들끓는 와중에도 이 생각만큼은 명료하다. 허용된 모든 것을 원한다. 몸 위를 어지럽게 헤매는 손을 모두 밀쳐내고, 낯설고도 그리운 사람의 목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말 없는 대답이었다.

 

나는 오늘 밤 이대로 눈을 뜨지 않을 것이다.

 

 


 

V/

맙소사, 이반! 이렇게 크다니.

 

인사도 무엇도 아닌 이 말은, 일리야 파블로비치 박사가 나와 마주하고 뱉은 첫 마디였다. 박사는 나를 앉혀 두고 이런저런 소회를 떠들어대었다. 이십 년 전 바로 이 방에서 나의 어머니 소피아 이바노브나를 만났다는 것, 그때 나는 어머니의 치마폭에 꼭 매달려 있었다는 것. 마르파 아주머니와 함께 알료샤를 받아낸 것도 박사 자신이었다는 것. 나는 소파 등받이에 아무렇게나 고개를 떨군 채 그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어차피 기억나지도 않는 일이다.

 

자네에게는 유감인 일이네만, 부모가 자식에게 병을 물려 주는 경우를 종종 보아 왔다네. 특히 어떤 종류의 신경증은 말이야…….

 

일리야 파블로비치는 한참 더 설교를 늘어놓은 끝에야 자리를 떴다. 약이 듣자 열이 내렸고, 문간에서 걱정스레 지켜보던 그리고리도 제 자리로 돌아갔으며, 그제서야 나는 도로 혼자가 되었다.

 

나는 이제 의사에게 털어놓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로 마음먹는다. 새벽의 일이다. 눈을 떴을 때는 막 희끄무레한 빛이 방 안을 채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당연하게도 침대 위에 누운 것은 나뿐이었지만, 방금까지 다른 누군가가 이 방 안에 있었다는 느낌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밤사이 열이 내렸는지, 아주 느리게나마 몸을 일으켜 기대앉을 수가 있었다. 누군가 돌보아 준 걸까? 그럴 리는 없다. 마르파는 물론이고 그리고리에게도 방에 들어오지 말라 당부를 했으니까. 문은 내가 이 방에 들어왔을 때와 똑같이 굳게 잠겨 있었다. 막 땀에 젖은 이마를 닦으려던 때였다. 내 손바닥 한가운데 보란 듯 말라붙은 것에 눈이 갔다…… 핏자국이었다.

 

허둥지둥 달려가 거울 앞에 섰다. 내 키만한 거울은 흰 천으로 덮여 있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그 누구도 이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천을 걷었다. 창백한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그의 입가며 턱, 뺨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신선한 것은 아니었다. 만지면 그대로 부스러져 떨어졌으니까. 입 안으로 혀를 굴려 보았지만 상처는 없었다. 손에도, 얼굴에도, 나머지 몸 전체에도. 거울 앞에 황망히 서 있는 동안 간밤의 악몽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이 방에 들어왔다. 나는 그를 동생의 이름으로 불렀고, 그는…….

 

나는 침대 시트를 쥐어 얼굴과 손에 남은 핏자국을 벅벅 닦아 버렸다. 알료샤는 어제 이 곳에 없었다. 그는 멀리, 여기서 몇십 베르스타나 떨어진 수도원에 잠들어 있다. 수도원의 아침은 빠르니 어쩌면 벌써 일어났을지도. 어쨌든 그는 나의 꿈으로부터 안전한 곳에 있었다.

 

 


 

S/

막 떠오른 햇빛이 안개에 번지고 있었다. 익숙하게 주방으로 향해 식사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다.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모습을 비춘 건 그리고리 씨였다. 의사를 부르러 가기엔 조금 이르지 않나하는 생각은 감추고 환자가 생겼으니 식사에 신경을 쓰라는 말에 고개를 한 번 숙일 뿐이었다.

 

잠을 이루지 못했으나, 단잠보다 더 달디단 것을 입에 담았기에 손놀림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준비하던 것이 완성될 때쯤 간을 보기 위해 입을 벌렸을 때였다. 식도로 넘어가는 것에 그 어떤 맛도 느낄 수 없었고 그 자리엔 작열하는 통증만이 가득했다.

 

.

 

몇 번이고 짓씹어 댄 입안의 여린 점막과, 혀 그리고 입술이 제각기 고통을 호소했다. 주인님에게 몇차례나 뺨을 후려맞았을 때보다 심하게 상처가 났음이 분명했다. 성한 곳이 하나 없는 입으로 크게 미소지은 건 그것을 깨달은 다음의 일이었다.

 

단 한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철저히 배제당하곤 했다. 무시를 넘어 멸시를 받은 나의 피로 당신의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물들여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답을 대신해 목으로 둘러졌던 당신의 팔의 감촉이 여전히 목과 등뒤로 흘렀다. 이상한 정복감에 몸이 사정없이 비틀어질 것 같다.

 

. 항상. 모르는 것을 일깨워주는 당신에 대한 갈구는 더욱이 커졌다. 열병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피워낸 신음의 메아리. 부정당한 부정한 것으로 열병의 자리 뿐아니라, 그 전체를 채우고 싶다. 입 안의 상처만으로 부족하다하면, 팔과 목에 길게 상처를 내어 그 피로 당신을 덮어내고야 말 것이다.

 

멸시받은 피를 온 몸에 새빨갛게 뒤집어쓰게 하고는, 결국에는 당신에게 당연하던 것을 잃게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