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logue : VANECHKA

Монолог 3

SMER/VANYA 2020. 3. 24. 17:50

 

 

 

어릴 적에, 감기에 걸렸을 때 마르파 아주머니가 종종 해 주던 음식이 있어. 후추를 듬뿍 넣은 토끼고기 스튜인데…….

 

나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어…… 그 토끼는 가만 내버려 둬.

 



점심으로 나온 수프에 병아리콩이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스푼 한 번 담그지 않고 그릇째 도로 내려보냈고요.

 


오후 세 시, 복도에서 알렉세이와 그리고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형이 나를 불편해하는 것 같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정말이야, 그리고리. 나와는 거의 이야기도 하지 않는걸. 내가 말을 걸면 어쩐지 곤란한 표정을 하거나, 급한 일이 생각났다고 하면서 자리를 떠.
정말로 바쁘신 것일 수도 있지요. 그리고리의 목소리에서는 곤란해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그렇게 믿고 싶어. 하지만…… 요즘의 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난 도저히 모르겠어.
걱정 붙들어 매세요. 두 분은 형제가 아닙니까. 피는 못 속이는 법입니다.

나는 발소리를 죽여 모퉁이를 돌았다. 다행이야, 알료샤. 네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게. 넌 이 까라마조프 가의 지붕 아래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지. 요즘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구의 꿈을 꾸는지, 어떤 상상을 하며 밤잠을 못 이루는지 네가 알게 된다면……. 그런 생각을 하며 계단을 밟는다. 걸음을 뗄수록 네게서는 멀어진다. 계단참 저 아래 현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불쾌한 뒷모습이었다. 나는 스치듯 지나가며 속삭였다.

종이가 필요해.
시내에 다녀올까요? 하인이 답했다.
아니. 그런 데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침묵은 짧았지만 그 의미는 명백했다. 스메르쟈코프는 잠시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공손하게 손을 모은 다음 고개를 숙였다.

방으로 가져다 놓겠습니다.

 

 


https://martyr-and-apostasia.tistory.com/18


 


모든 이름에 뜻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떤 것들은 분명한 뿌리를 가지고 있지. 이를테면 파벨. '작다'는 뜻이야. 물론 이 집의 하인은 전혀 조그맣지 않지만.

 


네 발 달린 동물은 마구간에나 가 버려. 
물론 알료샤가 어느 날 갑자기 네 발로 걷게 된다고 해도, 나는 그 애를 여전히 내 동생으로 대할 거야.

 


이 집의 부엌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하나 있는데, 주로 재료를 손질하는 데 쓰이는 것 같더군요. 하인 녀석이 거기 앉아 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큰 칼을 쥔 채로 어떻게 눈을 붙일 수가 있을까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파샤, 파툴랴! 

그렇게 소리치며 현관으로 뛰어나갔다. 열린 문간에는 겨자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다. '자연과학부의 파셴카', 그러니까 파벨 레오니디치 페트로프. 대학에서 만난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명이었다.

파샤는 모스크바 토박이로, 아주 괜찮은 집안 출신이다.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젊은 페트로프의 앞으로는 평생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재산이 떨어졌는데, 그의 반응은 모스크바의 다른 귀족 젊은이들과는 좀 달랐다. 방탕과 사치에 부와 젊음을 낭비하는 대신 학문에 매진하기로 한 것이다.

그와 나는 꽤 자주 어울렸다. 페트로프는 내 생각들을 흥미롭다고 여겼고, 나는 그가 나의 빈곤에 대해 동정을 내비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우정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미지근한 관계였으나, 그도 나도 이것으로 만족이었다.

그러나 내가 모스크바를 떠나온 이후로 그와 나 사이에는 편지 한 통 오가지 않았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여기 까라마조프 가 저택의 현관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형의 영지가 이곳으로부터 50베르스타쯤 떨어져 있는데, 그에게 방문하려던 차 내가 여기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외출을 할 거야. 저녁 늦게나 돌아올 테니, 식사는 준비하지 마.

하인은 대답 대신 고개를 깊이 숙였다. 나는 그의 뺨에 모르는 멍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밤새 들리던 시끄러운 소리는 아버지란 작자 탓이었던 모양이다. 가볍게 혀를 찬 다음 길을 나섰다. 그날 내가 파벨 레오니디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전부 시덥잖은 것들이니까. 그는 마차에 오르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바냐, 언제 한 번 모스크바에 놀러와. 

나는 시간이 된다면, 이라고 대답했다. 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제 그 도시에 볼일은 없다.

역에서 까라마조프 가의 저택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막 중앙 광장을 빠져나와 대로변으로 접어드는 순간, 나는 또 한 명의 '파벨'을 떠올렸다. 파샤, 파셴카, 파툴랴, 파쉬카, 파블레치카. 파벨 레오니디치 페트로프가 아닌, 파벨 스메르쟈코프. 불릴 부칭이 없는 이. 성조차 없어 어미의 별명을 물려받았지. 어머니의 배를 찢고 태어난 천덕꾸러기. 간질병에 걸린 하인놈……. 뒷목이 선득해졌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하기를 그만두어 버렸다.

 



아주 어릴 때의 일인데도, 놀랍도록 생생한 기억들이 있다. 이를테면 요람에 누워 있던 알료쉬카를 처음 보았던 때. 새까만 머리카락이 이마에 몇 가닥 붙어 있었다. 조그만 손은 바쁘게 고물거렸고, 마르파가 장미수로 정성스레 씻긴 몸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너는 눈을 꼭 감고 있었어.

마르파 이그나치예브나. 내가 말했다.
아기가 눈을 안 떠요.
아기들은 원래 아주 오래 잔단다.
눈을 떴으면 좋겠는데.
왜?
어떤 색인지 궁금하니까요.

알료샤는 이틀 뒤에야 눈을 떴다. 아기의 눈은 짙은 잿빛이었다. 아마 그때가 알렉세이에게 처음으로 실망을 느꼈던 순간일 것이다. 내 눈은 푸른색이었으니까…….

 


이런 밤이면 열이 오른다.

벽을 보아서는 안 된다. 천장도 마찬가지다. 가장 좋은 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눈을 꼭 감는 것이다. 벽지의 얼룩을 마주쳐 노려보면 금세 눈과 코와 입을 갖추어 말을 걸어온다. 알료샤의 얼굴이 둥둥 떠다니며 살갑게 굴기 시작한다. 또 문을 열어놓았구나. 형은 내게 항상 친절하다니까.

알렉세이는 어린 시절 종종 발작을 일으키곤 했다. 지금은 어떨까. 잘 모르겠다. 나는 요새 그애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원인은 다양했다. 큰 소리, 이를테면 아버지의 고함. 그릇 깨지는 소리.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 천둥이 치는 소리. 교회의 종이 울리는 소리. 어머니의 비명, 그런 것들. 오른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는 것이 전조였다. 그런 날이면 나는 재빨리 동생을 붙잡아 장롱 안으로 밀어넣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알료샤가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을 다른 누군가가 보아서는 안 된다고,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장롱 안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몇 분, 몇 시간, 며칠? 감각이 온통 무뎌진 동안 나는 몸부림치는 료셴카를 끌어안고 있기만 했다. 빨리 지나가라. 얼른 빠져나가라. 다 흘러나가라. 그렇게 빌 때도 있었다. 알료샤의 몸 속에는 피가 아니라 불이 흐르는 것 같았다. 나는 마르파의 옛이야기를 떠올렸다. 장미와 밀랍과 꿀과 계피로 빚어진 사내애들. 바바야가 할멈이 알렉세이를 만들어 이 세상에 놓아 줄 때 무언가 다른 재료를 넣은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발작은 그 시작과 마찬가지로 끝나는 것도 갑작스러웠다. 온 몸의 떨림이 멎고, 크게 숨을 들이쉬면, 나는 쓰러지는 동생을 받아낼 준비를 했다. 발작을 끝낸 알료샤의 몸은 차가웠다. 몸 속에 흐르던 불이 아주 작은 구멍으로 다 빨려나가 버린 것처럼. 나는 료센카가 아주 조금이라도 따뜻해질 때까지 꽉 끌어안고 있다가, 장롱 문을 열고 나가 작은 몸을 바닥에 눕혀 놓았다.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하는 이유가 뭐야? 불청객이 묻는다.
네게 이야기하는 게 아냐. 내게 이야기하는 거지. 듣기 싫으면 꺼져 버려. 내가 대답했다.
나갈 수가 없어. 그야 네 몸은 너무 따뜻하거든. 동생의 몸 속에 피 대신 불이 흐르고 있다고 했지?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이봐, 이반 표도로비치 까라마조프. 네게도 검은 피가 흘러. 너와 네 동생이 다른 점은, 거기까지 말한 악마가 짐짓 거드름을 피웠다. 
네 동생에겐 그 불꽃이 흘러나갈 구멍이라도 있지만 넌 그렇지 않다는 거지. 봐. 또 열이 오르지. 넌 오늘 밤 열병을 앓을 거야. 우리가 네 안에 갇혀 있으니까. 네가 우리를 가둬 놓았으니까. 사람의 몸은 너무 따뜻해.
나는 잘 거야. 더 이상 방해하지 마.